일본 위키피디아 <무도회>, <가면무도회> 항목

2020. 5. 13. 00:44마스커레이드 미라쥬/관련 정보

-일본 위키피디아 <무도회>, <가면무도회> 항목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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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舞踏会)>


 

윌리엄 호가스, 무도회, 1745


빌헬름 가우제, 호프부르크의 궁중무도회, 1900.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열린 무도회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주변에 귀족들이 모인다

 

 무도회(: ball)란 서양에서의 정식 댄스파티를 말한다. 영어의 ball은 이러한 무도회에서 추는 정식 댄스(볼룸 댄스, 사교댄스, 민중의 댄스인 포크댄스와는 대조를 이룬다)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말은 라틴어로 춤추다를 의미하는 ballare에서 유래한다(스페인어나 포르투칼어로는 ballarebailar로 변화하였다).

 

궁정에서 개최되는 무도회를 궁정무도회라 한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궁정무도회는 유럽 국가들의 궁정에서 전례(典礼), 의식 등의 기회에 개최되었다. 이러한 장소에서의 댄스는 사교계에 필수적인 것으로 영국에서 사교댄스로 집대성되었다.

 

참가자는 연미복이나 이브닝드레스 등의 야회복을 입고 무도회에 참여한다. 초대할 때는 화이트 타이(정식 예복,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볼 가운)나 블랙타이(준예복, 턱시도 등)의 드레스코드가 지정된다. 오스트리아에서 행해지는 유럽에서 가장 격식 높은 댄스파티 중 하나인 오펀발이라 불리는 무도회에서는, 여성은 순백의 이브닝드레스에 흰 오페라 글러브 착용이 의무화되어 있다.

 

 

[무도회의 종류]

·코티용(Cotillion): 미국 남북부를 중심으로 행해지는, 데뷔당트(débutante)를 마을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사교계에 데뷔시키는 무도회.

·가면무도회

·프롬(Prom): 미국 고등학교나 대학에서의 졸업 댄스파티

·오펀발(en: Vienna Opera Ball): 빈 국립가극장에서의 데뷔당트(데뷔하는 사람)을 포함하는 무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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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무도회(仮面舞踏会)>


 

가면무도회란, 가면을 써 자신의 신원을 숨기고 행해지는 무도회를 말한다. 마스커레이드(: masquerade) 나 발 마스케(: bal masqué)라고도 한다. 베네치아가 발상지. 또 음악, 문화 외 다수 작품에 가면무도회마스커레이드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목차]

1. 가장행렬(仮装行列)과 가장무도회

2. 가면무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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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행렬과 가면무도회]

 

샤를 6세의 궁정에서 일어난 가장무도회 사건. Bal des Ardents, 1450-1480년경의 세밀화

 

 가면무도회는 참가자가 가면 등을 쓴 채 진행되는 무도회 등의 이벤트이다. 이러한 모임의 기원은, 중세 후기의 유럽 궁정에서 행해진, 우화적으로 공들인 의상에 의한 장려한 행렬이나, 혼례를 축하하는 득의양양한 행진이나, 그 밖에 궁정 생활에서의 화려한 행사와 여흥에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가장무도회(모리스코, morisco)가 있다.

 

가장무도회를 무대로 한 유명한 참극으로, 백년전쟁 시기의 프랑스 국왕 샤를 6세 시대에 일어난 불타는 사람의 무도회(“Le Bal des ardents”)라는 사건이 있다. 왕비 이자보 드 바비에르는 시녀 한 명의 혼례를 축하하며 1393128일에 대규모 가장무도회를 개최했다. 샤를 6세와 다섯 명의 귀족은 아마와 송진으로 몸을 덮고, 털이 수북한 숲의 야만인으로 분장해 서로를 쇠사슬로 묶고 춤추는 “Bal des sauvages" (야만인의 춤)을 하려 했으나, 횃불에 너무 가까이 간 나머지 의상이 불타올라, 샤를 6세는 구조되었으나 4명이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되었다. 샤를 6세는 이미 영국군에 대한 패전으로 충격을 받고 있었는데, 이후 급속하게 정신병을 앓게 되었다(이 사건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절뚝발이 개구리의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가장에 의한 무도회는 부르고뉴 공국 궁정에서는 특별한 기회에 행해지는 사치스러운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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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무도회]


가장과 가면을 한 베네치아의 카니발의 참가자


런던 극장에서의 가면무도회, 18세기 후반

 

 이러한 이벤트와 행진을 바탕으로, 15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 참가자가 가장을 하고 출석하는 공적인 제전(祭典)이 개최되게 되었다(이탈리아어로는 마스케라타 mascherata라 불렸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상류 계급의 구성원을 위하여 열리는 공들인 무도회로, 특히 베네치아에서는, 가면을 쓰고 진행되는 베네치아의 카니발전통과 결합되었기에 인기를 얻었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 유럽 대륙 전역의 궁정에서 베네치아식 가면무도회는 인기를 구가했다. 너무도 인기 있었던 탓에, 가면무도회는 풍기를 문란케 하는 원흉이라며 마리아 테레지아로 대표되듯이 금지령을 내린 인물도 있었다. 또 가면무도회는 종종 비극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는 1792, 가면무도회의 한창 때에 그의 통치에 불만을 가진 귀족 야콥 요한 앙카스트룀(Jacob Johan Anckarström)에게 권총으로 암살당했다. 이 사건은 외젠 스크리브의 오페라 구스타브 3,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소재가 되었다.

 

요한 야콥 하이데거는 1710년에 베네치아식 가면무도회를 런던의 헤이마켓 오페라 하우스에서 개최했다. 하이데거는 스위스의 백작의 이름으로 유명인이 되어, 18세기의 영국 및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가면무도회는 크게 유행했다. 한편 가면무도회나 이를 소개한 하이데거에 대해, 도덕과 윤리를 마비시킨다는 혹독한 비난이 각계에서 쏟아져 반대 운동도 일어났다. 윌리엄 호가스는 가면무도회의 융성이나 하이데거를 풍자하는 판화를 출판했으며, 가면무도회의 존재를 반대하는 작가들(그중에는 헨리 필딩도 있었다), 영국 내에 반도덕성이나 해외의 악영향을 널리 퍼뜨리는 것으로 가면무도회를 비판한다. 그들은 권력자에게 가면무도회 반대를 설득했으나, 이를 금지하기 위한 수단의 강제력은 산만한 것으로 머물렀다.

 

가면무도회는 초대 손님들끼리의 게임으로 개최될 때도 있었다. 가면을 쓴 손님들은 정체가 누군지 모를 만한 복장을 하고, 서로의 정체를 맞히는 게임을 했다. 이 게임의 영향으로, 인물의 정체를 혼란시키기 위해 보다 유머러스하게 연구된 가면이 등장한다.

 

가면무도회는 오늘날에도 전세계에서 행해지는데, 파티의 분위기 만들기가 강조되며, 사교댄스 부분은 별로 강조되지 않게 되었다. 보다 더 스스럼없는 할로윈 등의 가장 파티가, 과거의 수상한 가면무도회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현재에 남은 대표적인 가면무도회로는, 빈 대학 동창생들의 무도회 루돌피나등이 있다.

 

가면무도회는 매우 그림 같은 행사이기 때문에, 문학이나 음악의 소재가 되어 왔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적사병의 가면에서는, 적사병(赤死病)이라는 역병을 피해 수도원에 틀어박힌 귀족들이 연 가면무도회에, 적사병 환자를 떠올리게 하는 불길한 가면을 쓴 인물이 나타난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황야의 늑대에서는 취리히의 가면무도회가 중요한 무대가 된다. 18세기 영국의 상류 계급을 무대로 삼은 많은 로맨스 소설에서는, 가면무도회가 무대가 되거나 플롯을 진행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